유괴된 아이가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올 확률이 0.1%도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다가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본 장가이 감독의 영화 《디어리스트》는, 그 숫자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디어리스트, 하루 200명이 사라지는 나라, 부모가 무너지는 방식
중국에서는 하루 평균 200명, 매년 수십만 명의 아동이 유괴됩니다. 이는 중국 공안부가 공식 집계하는 수치로, 과거와 비교해도 개선이 체감될 만큼 줄어들지 않은 수치입니다. 이 영화는 그 거대한 수치 중 단 하나의 사례, 선전(深圳)이라는 도시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들을 잃어버린 티엔중과 류샤오안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이혼한 두 사람이 공동 양육하던 아들 펑펑이는, 가게 안에서 손님끼리 싸움이 벌어진 틈을 타 거리로 나갔다가 엄마의 차를 발견하고 혼자 뒤를 쫓다가 그만 낯선 거리에 홀로 남겨집니다. 실종신고를 해도 24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이 CCTV 확인에 나서고, 그때는 이미 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뒤였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건 단순히 극 중 상황이 잔인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 대형 쇼핑몰에서 조카의 손을 잠깐 놓쳤을 때, 그 10분이 얼마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신이 굳는 듯한 공포였습니다. 그 공포가 수년간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가를 이 영화는 극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가 담아내는 피해자 부모들의 심리적 붕괴 과정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권력에 대한 신뢰 상실: 신고 후 즉각적인 수사 착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부모가 직접 수사에 나서게 되는 구조
- 포상금 사기 피해: 아이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믿고 전국을 떠돌다 재산을 탕진하는 반복적 피해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자식 실종 이후 수면장애, 감정 조절 불능, 대인관계 단절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후유증. 여기서 PTSD란 충격적 사건 이후 그 기억이 반복적으로 침습하여 일상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정신건강 상태를 의미합니다.
티엔중이 결국 노숙자 처지가 되어서도 아이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 장면에서,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집념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삶의 다른 목적을 상실한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허망함이 오히려 더 깊은 연민을 자아냈습니다.
유괴 피해자 부모 모임, 즉 연대(連帶)의 서사가 본격화되면서 영화는 개인의 비극을 집단의 저항으로 확장합니다. 여기서 연대란 동일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적 행동으로 사회 구조에 맞서는 방식을 뜻합니다. 달리는 버스 창문 너머로 트럭 짐칸 자루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차를 쫓는 장면은, 이들이 슬픔에 잠긴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범죄에 맞서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었습니다.

가해자의 아내도 어머니였다, 법이 감당하지 못한 질문
영화의 진짜 서사적 파격은 아들 펑펑이를 되찾는 순간부터입니다. 3년 만에 극적으로 아들을 되찾았지만, 아이는 이미 친부모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아이를 키워온 여인 리치를 엄마라 부르며 울부짖습니다.
리치는 유괴범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법적 절차 없이 입양된 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길러온 여성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모성권(母性權)이라는 극히 불편한 개념을 들이밉니다. 모성권이란 법적 혈연관계와 무관하게 양육이라는 실질적 행위를 통해 형성된 감정적·사회적 권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법정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순간이 바로 리치가 아동 보호소 창문 밖에서 딸을 바라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눈물의 무게가 영화 초반 류샤오안의 눈물과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이 더 정당한 슬픔인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고,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법정에서는 도시 상인 류샤오안과 농촌 출신 리치의 입장이 충돌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법적 정의(legal justice)와 감정적 정의(emotional justice)가 얼마나 잔혹하게 어긋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적 정의란 제도와 절차에 따라 귀속 관계를 판단하는 것이고, 감정적 정의란 실제 양육 관계와 애착을 기반으로 한 윤리적 판단을 뜻합니다. 이 두 개념이 충돌할 때, 어느 쪽도 깔끔하게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결말이 증명합니다. 두 어머니 모두 아이의 완전한 양육권을 얻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달으니까요.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후반부 전개에서 연출의 아쉬움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리치가 공사장 동료에게 증언을 부탁하는 과정, 변호사가 갑자기 감화되어 사건을 맡는 흐름은 전반부의 다큐멘터리적 사실주의 리얼리즘(realism)과 다소 이질감을 자아냈습니다.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미화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예술적 태도를 뜻하는데, 영화 초반이 이 기조를 탁월하게 유지하다가 후반부에서 신파적 멜로드라마로 기울었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이 점이 아쉬웠던 건 제 경험상, 절제된 시선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동 유괴 피해 문제는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제아동보호기구 ICMEC(International Centre for Missing and Exploited Children)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아동 실종 및 인신매매 피해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회수율은 국가별로 극단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이 수치를 보면, 《디어리스트》가 단순히 중국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범죄 문제를 다루는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괴 범죄가 남기는 상흔은 아이에게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끝까지 놓지 않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단 한 번의 범죄가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엮인 모든 사람의 삶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바꾸는가. 그 답을 찾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저도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슬픈 영화를 본 것과는 다른 무게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현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그 무게의 정체였습니다. 유사한 실화 기반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디어리스트》를 강력히 권합니다. 후반부 연출의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만큼은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