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9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가 실제 자금성에서 찍혔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저는 그 웅장함보다도 세 살짜리 아이가 황제가 된다는 설정의 황당함에 먼저 숨이 막혔습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며,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잔혹한 허상인지를 묵직하게 던져놓는 작품입니다.

마지막황제, 세 살 황제, 자금성이라는 황금 감옥
1908년, 서태후는 임종 직전에 어린 푸이를 청나라의 새 황제로 지명했습니다. 당시 푸이의 나이는 고작 세 살이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황제가 그려내는 비극의 출발점입니다.
영화가 탁월한 이유 중 하나는 미장센(mise-en-scène)의 활용입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카메라에 담기는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배우 배치·색채·세트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실제 자금성 안에서 촬영된 황금빛 화면은 그 자체로 장엄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어린 황제의 고립감을 시각적으로 완성합니다. 제가 대학 시절 아시아 근현대사 학회 행사를 위해 이 영화를 처음 스크린으로 봤을 때, 분명히 화려한데 숨이 답답했던 이유가 바로 이 미장센의 힘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갓난아기 적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 아이, 어머니가 아편을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음에도 장례식조차 가보지 못하는 황제. 푸이의 어린 시절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권력자의 초상 그 자체였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음악이 그 쓸쓸함을 배가시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황제의 이야기에 이토록 처연한 서정성이 어울린다는 것을요.
괴뢰황제로의 전락, 만주국이라는 허울
1924년, 군벌 쿠데타로 자금성에서 쫓겨난 푸이는 톈진에서 일본의 보호 아래 방탕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1934년,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여기서 괴뢰국(傀儡國)이란, 표면상 독립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치·군사 결정권을 외부 강대국이 장악하고 있는 허수아비 국가를 의미합니다. 만주국이 바로 그런 구조였고, 영화는 푸이가 이 사실을 조금씩 자각해가는 과정을 꽤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 지점에서 자꾸 멈칫하게 됐습니다. 푸이를 어디까지 피해자로 봐야 하는가, 하는 질문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를 일본에 납치되다시피 한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푸이 스스로도 "강제로 끌려갔다"고 주장했고, 영화 역시 그 주장에 우호적인 시선을 유지합니다. 반면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황실 복권이라는 야망이 그의 협력에 분명히 작용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피해자였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주국 시절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황후 완용의 몰락입니다. 일본의 통제 아래 심각한 아편 중독자가 되어가는 완용의 모습은, 만주국이라는 공간이 결국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주국 시기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32년 만주국 건국, 푸이는 집정으로 취임
- 1934년 황제로 격상되었으나 실질 권한 없음
- 일본 관동군이 모든 국가 운영을 실질 지휘
- 731부대 등 생체실험 기지가 만주국 영토 내 운영됨

서구 거장의 오리엔탈리즘, 그 화려한 맹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만들어낸 이 작품에 대해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이란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립한 개념으로, 서구가 동양을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시선과 그 표현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은, 만주국 통치 시기 실제로 고통받은 민중들의 삶이 철저히 배경으로만 처리된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수용소 장면에서 일본군의 생체실험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는 푸이의 표정이 등장하는데, 제가 그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저 멍한 표정 하나로 그의 책임이 심리적 충격 속에 증발해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영화 연구자들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마지막 황제》는 서구 감독이 동양의 역사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 사례로, 정치적 책임보다 개인의 심리적 비극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 장면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이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의 주도로 진행된 대규모 사회·정치 운동으로, 전통 문화와 지식인을 부정하며 홍위병이 민중을 통제·탄압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화는 이 복잡한 사건을 주로 수용소 소장이 끌려가는 장면 하나로 압축하는데, 20세기 중국 근현대사의 내부 모순을 담기엔 너무 얇은 처리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충실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만큼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피날레가 남긴 것, 황좌 앞의 늙은 황제
그럼에도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피날레 때문입니다. 9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정원사로 살아가던 노년의 푸이가 자금성에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 어릴 적 자신이 앉았던 황좌 앞으로 걸어갑니다. 그리고 경비원의 아들에게 여치통 하나를 건네며 미소를 짓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 속이 무거웠습니다. 뜨거운 탄식 같은 것이 올라왔고, 어두운 방 천장을 바라보며 인간의 자유와 운명에 대해 한참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영화 속에 있었습니다.
아카데미는 이 작품에 작품상·감독상·촬영상·음악상 등 9개 부문을 수여했습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89%, 메타크리틱 76점이라는 수치는 비평적 내구성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메타크리틱이란 영화·음악·게임 등의 평론가 리뷰를 수치화하여 집계하는 플랫폼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비평가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적 면죄부 논란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가 여전히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영혼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권력도 자유도 없이 황좌만 가졌던 한 인간의 이야기는, 지금 읽히는 맥락이 1987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마지막 황제를 보기 전에 푸이의 자서전 나의 전반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영화가 선택하고 지운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