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국가 간 외교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지난 주말 뉴스를 훑다가 저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중국에서 개봉한 역사 영화 《731》이 하루 만에 수억 명을 동원하고, 중국 내 일본인 학교가 휴교를 결정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단순한 흥행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스크린 안팎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한 느낌이었습니다.

역사 고발과 프로파간다 사이, 어디쯤에 있는 영화인가
영화 《731》은 중국 북동부 하얼빈 일대에서 일본 제국군 731 부대가 자행한 생체 실험, 즉 살아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 의학 실험과 세균전 연구의 실체를 다룬 역사 고발 영화입니다. 개봉일은 9월 18일로, 이 날짜는 1931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철도를 폭파한 만주사변(류탸오후 사건) 발발일과 정확히 겹칩니다. 여기서 만주사변이란 일제가 중국 본토 침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으로, 중국인에게는 국치(國恥)의 날로 기억되는 날짜입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민족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그날에 이 작품을 공개한 것은 분명 효과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장면은 수감된 피해자들끼리 생사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시퀀스였습니다. 같은 방에 갇힌 사람들 중 패자가 생체 실험 대상자로 선발되는 구조인데, 폐쇄적인 세트장과 방진복을 착용한 간수들의 모습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데스게임 메커니즘을 강하게 연상시켰습니다. 여기서 데스게임 메커니즘이란 극도로 불평등한 권력 구조 아래에서 약자들이 서로를 희생시키도록 강요받는 서사 장치를 말합니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는 없지만, 저는 이 레퍼런스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슬로건은 "이름을 기억해서 그 존재를 잊지 말자"입니다. 731 부대 희생자 중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고, 실제로 영화 속에 한국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과, 스크린에서 이름으로 호명되는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감동을 오래 붙잡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영화 외적인 맥락 때문입니다. 철저한 문화 검열과 통제를 유지하는 중국에서 개봉 첫날 전체 인구의 약 7분의 1에 달하는 관람객을 동원하고, 극장 안에서 국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는 사실은 국가 주도형 동원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국가 주도형 동원이란 정부가 미디어·교육·공공기관 채널을 통해 특정 콘텐츠 소비를 조직적으로 장려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행위 자체는 정당하지만, 그 감정이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인 전체에 대한 물리적 위협으로 표출될 때 그것은 고발이 아니라 선동에 가까워집니다.
영화가 순수한 역사 고발물인지, 아니면 정치적 프로파간다(국가가 대중의 여론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선전 활동)인지를 판단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개봉일이 만주사변 발발일(9월 18일)과 일치하는 점
- 정부의 문화 통제 환경에서도 전례 없는 관람객 동원이 이루어진 점
- 극장 내 국기 게양과 민족주의 구호 제창이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진 점
- 영화 직후 중국 내 일본인 학교 휴교 사태가 발생한 점

한일령이 드리운 동아시아 외교 지형과 한국의 스탠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한일령(限日令)이라는 개념부터 짚어야 합니다. 한일령이란 중국이 일본의 문화 콘텐츠와 제품 소비를 범국가적으로 억제하는 비공식 문화 제한 조치를 말합니다. 한국이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이후 중국으로부터 한한령(限韓令, 한국 문화 제한 조치)을 당했던 것과 유사한 구조입니다. 이 기류는 현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중국의 대만 군사 개입 시 자위대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발언 이후 급속도로 강화되었고, 일본 내 중국 관광객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제가 이 흐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8년 전 한한령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중국은 공식 종료 선언 없이 서서히 제한을 풀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2025년 경주 APEC 회의에서 한중 간 한한령 관련 실무 협의가 오갔다는 소식도 들렸는데, 중국이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협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니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地政學的 構圖, 지리적 위치가 국가 간 권력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 한국의 위치는 묘하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에 한일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친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일본은 강력한 이웃 국가인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 내 2, 30대는 SNS를 통해 한국 문화를 그 어느 세대보다 열렬히 소비하고 있으며, 이는 레거시 미디어(기성 방송·신문처럼 정치적 프레임이 강한 전통 매체)가 아닌 자발적 문화 교류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그 지속성이 더 견고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연대입니다. 중국이 역사적 피해 의식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반일 정서를 고취할 때, 같은 역사적 피해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이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흐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감정과 외교적 판단은 별개로 다뤄야 합니다.
결국 이번 영화 《731》을 둘러싼 모든 맥락이 한국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두 강대국이 서로 "넌 내 편이지?"라고 압박해올 때, 우리는 어느 쪽 감정에도 끌려가지 않고 냉철하게 국익을 계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특정 정치 세력의 도구로 소비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번 사태는 그것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한 편의 역사 고발물로 기억하고 싶지만, 동시에 미디어가 대중 감정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로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중일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한국이 발휘해야 하는 외교적 균형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이 요구될 것입니다.